제주도 매력에 빠져 5개월을 살게 된 이야기 #2 (크리스마스이브, 드디어 첫 무늬오징어를 잡다)
제주도매력.
요즘은 거의 휴대폰으로만 톡을 하다 보니 자판이 점점 어색해진다.
생각해보면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컴퓨터를 만졌다. 이 얘기하면 라떼인가?
애플 8비트 컴퓨터 시절이었으니 1982년쯤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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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비트컴퓨터와타자기 |
군대에서는 타자기를 두드렸고, 이후로도 계속 키보드와 함께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컴퓨터 자판보다 스마트폰 터치 자판이 더 편하다. 세월이 참 많이 변했다.
그래도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데이터 입력은 예나 지금이나 노동이라는 것.
어쨌든 우리는 다시 서귀포로 내려왔다.
서귀포여고 앞 돔베리조트에서 한 달을 더 살면서 서귀포를 천천히 즐기기 시작했다.
직접 요리를 해 먹기도 하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느긋한 아침도 보내고.
나는 가끔 비행기를 타고 육지로 일을 하러 갔고, 아내는 혼자 서귀포를 탐험하며 제주를 알아갔다.
10월은 월정리, 11월은 돔베리조트, 그리고 12월은 법환.
한 달 살이도 결국 이사의 연속이었다.
숙소 알아보고, 짐 싸고, 옮기고, 다시 풀고...
생각보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12월, 법환으로 옮겨 짐을 풀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제주살이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날씨였다.
바람은 왜 그렇게 불어대는지, 눈은 또 얼마나 오던지.
낚시를 하려고 제주까지 왔는데 정작 낚싯대를 펼 날이 별로 없었다.
신기한 건 그렇게 눈이 내려도 펜션 텃밭의 상추는 얼어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상추를 토끼처럼 뜯어다 먹었다.
먹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나는 먹는 것에 진심이다.
살면서 맛있는 걸 못 먹고 산다면 죽을 때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물론 비싼 음식을 뜻하는 건 아니다.
맛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슬슬 서귀포의 맛집들도 알게 되었다.
특히 탐라에서는 미니족발을 '아강발'이라고 부른다.
날씨 때문에 낚시를 못 가고 집에서 TV를 볼 때면 꼭 사다 놓던 음식이었다.
그리고 우리 집사람은 딱새우와 뿔소라를 거의 멸종 직전까지 몰고 갔다.
올레시장에 가면 육지에서는 상상도 못 할 가격에 해산물을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제주에서는 우리도 잠시 만수르 행세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제주에 내려온 지 두 달.
전갱이는 수백 마리 잡았고,
무늬오징어는 한 마리도 못 잡았다.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
나는 해냈다.
두 달 가까이 무늬오징어 낚시를 배우고, 장비를 사고, 수없이 많은 전갱이를 잡아 미끼로 쓰면서도 한 마리도 못 잡았던 그 녀석.
드디어 첫 무늬오징어를 품에 안았다.
위미항에서 만난 젊은 야엔낚시 고수에게 방법을 배우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따라 했지만 쉽지 않았다.
사실 무늬오징어 낚시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에기를 사용하는 에깅이 가장 대중적이지만 내가 빠진 것은 일본에서 건너온 야엔낚시였다.
야엔낚시는 살아있는 전갱이를 미끼로 사용한다.
전갱이를 바늘에 꿰어 던져 놓으면 무늬오징어가 덮친다.
녀석은 전갱이를 안고 천천히 이동하고, 그 순간 드랙이 스르르 풀려 나간다.
처음엔 "왔다!" 하며 바로 챔질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
야엔낚시는 기다림의 낚시다.
오징어가 충분히 전갱이를 안고 먹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적당한 타이밍이 되면 특수 제작된 야엔 바늘을 원줄에 걸어 내려 보낸다.
야엔이 오징어까지 도착하면 그때 비로소 바늘이 다리나 몸통에 걸리게 된다.
말은 쉽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전혀 쉽지 않다.
라인을 너무 당기면 오징어가 전갱이를 놓고 달아난다.
너무 느슨하면 야엔이 제대로 활주하지 않는다.
일본 야엔 고수들은 장비보다 텐션 컨트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중에야 알았다.
무늬오징어를 잡는 낚시가 아니라 사람 멘탈을 잡아먹는 낚시라는 것을.
전갱이를 물고 드랙이 나가는데도 못 잡고,
야엔을 내려도 못 잡고,
눈앞까지 끌고 와서도 놓친다.
그러다 보면 오기가 생긴다.
"너 죽고 나 죽자."
실제로 나도 두 달 동안 수없이 입질을 받았지만 그 텐션을 맞추지 못해 번번이 실패했다.
전갱이를 물고 달아나는 방향을 읽고,
적당한 거리까지 유도하고,
야엔을 투입하는 타이밍을 잡고,
다시 텐션을 유지하는 것.
그 모든 과정이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한 마리의 무늬오징어가 내 것이 된다.
그래서 야엔낚시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모양이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드랙이 천천히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심장이 뛰었다.
'이번에도 놓치면 어떡하지?'
조심스럽게 텐션을 유지하며 거리를 좁혔다.
야엔이 활주할 수 있는 거리까지 녀석을 끌어냈다.
손에는 땀이 났다.
그동안 놓쳤던 수많은 입질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타이밍을 잡아 야엔을 내려 보냈다.
잠시 후.
툭.
그리고 묵직한 무게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걸렸다.
드디어 걸렸다.
약 1kg이 넘는 녀석이었다.
지금이야 2kg급은 되어야 대물이라고 말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무늬오징어였다.
첫 수의 감격은 정말 대단했다.
낚시를 오래 했지만 그런 기분은 흔치 않다.
"잡았어! 금방 갈게!"
두 달 동안 전갱이만 수백 마리 잡아 바쳤는데 정작 내가 먹은 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드디어 회칼이 무늬오징어 몸통을 가르고 있었다.
회를 뜨고 초밥을 만들고, 남은 다리살은 버터구이로 구웠다.
그리고 지금은 단종된 제주 소주 한라17을 곁들였다.
정말 예술이었다.
두툼한 회의 식감.
쫄깃하면서도 달큰한 맛.
그동안의 고생이 한순간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때 집사람이 한마디 했다.
"가서 또 잡아와. 맛있네."
허거덕.
낚시꾼에게 그 말은 사실상 출조 허가증이다.
배를 두드리며 푹 자고 일어났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오늘은 뭘 먹어볼까?"
제주에는 맛집이 정말 많다.
하지만 나는 관광객 맛집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가는 로컬 식당을 좋아한다.
특히 생선탕.
고기탕도 좋지만 해장에는 역시 생선탕이다.
맑은 대구지리 한 그릇이면 속이 시원하게 풀린다.
아...
갑자기 또 먹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날 잡은 첫 무늬오징어 한 마리가,
내 제주살이의 시작이자 또 다른 중독의 시작이 될 줄은.
그렇게 나는 점점 제주에, 그리고 무늬오징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