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세컨하우스를 가진 공인중개사가 2.5조 유령도시를 보고 든 생각(사업이 좌초된 진짜 이유, 공인중개사가 본 핵심 문제, 제주 미분양 상황과 겹치는 교훈)


3년 전, 경매로 서귀포시 하예동에 작은 빌라를 낙찰받았다. 논짓물 앞바다가 정면에 펼쳐지는 15평짜리 빌라였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낙찰받았고 물건을 인수한 뒤 내부를 살펴보니 상태가 깨끗했다. 가구와 가전제품도 충분히 쓸 만한 수준이었다. 아마 이전 소유자가 세컨하우스로 이용하고 있었나 보다. 기본적인 실내 공사와 집기를 들인 뒤 한달살이 임대를 시작했고, 남쪽 논짓물 앞바다 뷰가 워낙 좋아서 비수기에도 임대가 쏠쏠히 나가는 편이다.

하예동 빌라전경
논짓물 바다뷰

그런데 딱 하나, 그 좋은 뷰를 망치는 풍경이 있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해안절벽을 따라 늘어서 있는데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전혀 없다. 처음에는 공사가 잠시 중단된 건축 현장이려니 했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어도, 해가 바뀌어도 변화가 없었다. 궁금해서 조사를 시작했고, 그 뒤에 알게 된 이야기는 부동산을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기가 막혔다.



사업이 좌초된 진짜 이유

멀리 보이는 유령도시
멀리 보이는 유령도시


1997년, 제주도는 서귀포시 예래동 일대 약 22만 평을 유원지로 지정했다. 유원지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도민과 관광객을 위한 공익 시설이 들어설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말레이시아의 대기업이 약 2조 5천억 원을 투자해 초고급 콘도미니엄 147개동과 카지노, 고급 숙박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핵심 문제는 이 땅이 원래 마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점이다. 유원지 지정이라는 공익 명분으로 토지를 강제 수용했지만, 실제로 들어서는 시설은 부유층과 외국인 투자자만을 위한 폐쇄적인 리조트였던 것이다.


토지를 빼앗긴 원주민 22명이 소송을 제기했고, 법적 공방은 무려 18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리고 2015년, 대법원은 토지 수용 자체가 무효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유원지라는 공익 목적과 실제 사업 내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이유였다. 사업은 전면 중단되었고 강제 수용된 토지는 원래 주인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미 투자금을 쏟아부은 해외 투자자에게는 약 1,250억 원의 배상금이 세금으로 지급되었다. 공공의 이름으로 빼앗은 땅, 실패한 사업, 그리고 그 뒤치다꺼리를 위한 막대한 공공자금 유출까지. 하나의 개발 사업이 만들어낸 피해의 연쇄가 참으로 길고 깊었다.


중문 앞바다를 적당한 경사를 바탕으로 조망할 수 있는 탁월한 입지 조건, 인접한 중문관광단지와의 거리도 가까운 이 땅을 이런 식으로 망쳐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부동산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공인중개사가 본 핵심 문제


공인중개사로서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대기업의 욕심이나 행정의 판단 실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들이 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는 토지 수용의 함정이다.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수용한 토지의 실제 용도를 사후에 바꾸는 것은 법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다. 부동산 실무에서도 토지의 지목과 용도 지역 그리고 과거 수용 이력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사업은 그 기본이 완전히 무시된 채 수십 년간 진행되었다. 공익 수용은 강력한 권한인 만큼 그 목적에 엄격하게 부합해야 하는데, 시작부터 목적과 실행이 어긋나 있었던 셈이다.


두 번째는 인허가와 권리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착공에 들어간 것이다.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토지 권리관계는 건물의 기초와 같다. 기초가 불안한 건물이 무너지듯 권리관계가 불안정한 땅 위의 사업은 언제든 좌초될 수 있다. 일반인이 부동산을 매수할 때도 등기부등본의 권리관계를 꼼꼼히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소유권 분쟁의 소지가 있는 물건은 아무리 가격이 저렴해도 위험하다.


세 번째는 방치된 구조물이 가져오는 비용이다. 10년 넘게 바닷바람과 염분에 노출된 콘크리트와 철근은 심각하게 부식되어 있다. 이 구조물을 철거하는 데만 수백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방치된 건축물은 안전 위험에 그치지 않고 주변 지역의 경관과 부동산 가치에도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내가 운영하는 한달살이 빌라에서도 이 유령도시가 바다 너머로 보이는데, 입주하시는 분들이 그 풍경에 대해 물어올 때마다 설명하기 참 난감한 것이 사실이다.



제주 미분양 상황과 겹치는 교훈


이 유령도시 이야기를 지금 다시 꺼내는 이유가 있다. 현재 제주 부동산 상황과 묘하게 겹치는 지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2026년 현재 제주도 미분양 주택은 2,700호를 돌파했고, 준공 후 미분양도 2,200호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애월읍과 대정읍 같은 외곽 지역에 미분양이 집중되어 있다. 외곽에 대규모로 공급했지만 실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구도, 이것이 당시 예래 사업과 닮아 있다.


규모가 크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다. 외국 자본이 들어온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브랜드 이름이 화려하다고 매수자가 저절로 생기지도 않는다. 부동산의 가치는 결국 실수요에서 나온다. 누가 여기에 살 것인가, 누가 여기에 머물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없는 개발 사업은 아무리 화려한 조감도를 내걸어도 결국 멈추게 되어 있다. 지금 미분양 매물을 검토하는 분들도 이 유령도시의 교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제주도는 이 유원지를 도시개발사업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원주민 추가 보상 합의율도 70퍼센트를 넘겼다. 140개동에 달하는 구조물의 철거와 재생에 대한 기술검토도 진행되고 있다. 이 공간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번에는 공공성과 지역 상생을 처음부터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중문의 작은 빌라에서 한 달씩 머물며 이 섬의 진짜 가치를 느끼고 있다. 2조 5천억 원을 쏟아부어 만든 콘크리트 구조물은 멈춰 섰지만, 논짓물 앞바다의 파도는 오늘도 변함없이 밀려온다. 제주의 가치는 거창한 개발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있다. 2.5조가 멈춘 해안절벽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우리가 이 섬에서 진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