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하러 가는 길에 만난 제주의 두 번째 유령도시, 1조6천억 헬스케어타운 이야기(글로벌 의료관광의 꿈이 무너진 과정, 공인중개사가 본 외국자본 투자의 함정, 9년째 멈춘 사업의 현재와 앞으로의 과제)
보목동 빌라에 머물 때면 낚시를 하러 한림이나 애월 쪽으로 자주 나간다. 미끼용 전갱이를 잡으러 가거나 여름이면 한치를 노리러 가곤 한다. 중문 쪽에서 평화로를 타는 길도 있지만 중산간도로를 이용하는 편이 시간이 좀 더 빠르다. 그런데 서귀포에서 중산간도로로 올라가다 보면 반드시 지나치게 되는 곳이 있다. 제주 헬스케어타운이다.
처음 지나칠 때는 규모에 압도당했다. 6층에서 8층짜리 건물이 타원형으로 이어져 있고, 그 뒤로도 대형 구조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없다. 불이 켜진 창문 하나 없고, 출입구는 잠겨 있고, 건물 외벽에는 녹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예동 빌라에서 바라보이는 예래 유령도시에 이어, 낚시하러 가는 길목에서 또 하나의 유령도시를 만난 것이다. 도대체 이 아름다운 제주도를 왜 이렇게 망쳐야만 하는 건지, 누구의 이익을 위해 이런 사업을 시작한 건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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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스케어타운 |
글로벌 의료관광의 꿈이 무너진 과정
제주 헬스케어타운은 서귀포시 동홍동과 토평동 일대 약 47만 평 부지에 총사업비 1조 5,966억 원을 투입해 의료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제주 국제자유도시 6대 핵심 사업 중 하나로 지정될 만큼 국가 차원의 기대를 받았다. 한국의 우수한 의료 기술과 제주의 자연환경을 결합해 아시아 최고의 복합의료관광단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건강검진센터와 재활 전문병원, 의료 연구개발센터, 콘도와 리조트, 워터파크까지 갖춘 거대한 힐링 타운이 계획되었다.
2008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사업 시행자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2012년 중국 녹지그룹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녹지그룹은 전체 부지의 절반인 약 78만 평방미터를 매입하고 1조 원 투자를 약속했다. 1단계 사업으로 298억 원을 투입해 콘도미니엄과 힐링타운을 준공하는 데까지는 순조로웠다. 문제는 2단계 사업이었다. 공정률 56퍼센트 상태에서 2017년 6월, 자금난을 이유로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다. 약속한 1조 원 중 실제 투자액은 6,360억 원으로 63퍼센트에 그쳤다.
여기에 녹지국제병원 논란이 겹쳤다. 국내 최초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이 병원은 제주도가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조건부 허가를 내리면서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소송은 수년간 이어졌고 결국 녹지그룹 측이 패소하면서 병원 개설 자체가 무산되었다. 글로벌 의료관광이라는 화려한 비전은 자금난과 법적 분쟁이라는 이중 벽에 부딪혀 완전히 멈춰 버렸다.
공인중개사가 본 외국자본 투자의 함정
부동산을 업으로 다루는 사람으로서 이 사업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구조적 문제가 선명하게 보인다.
첫째, 외국자본에 대한 과도한 기대다. 녹지그룹은 중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사지만 결국 자금난으로 투자 약속의 63퍼센트만 이행했다. 외국자본이 들어온다는 사실 자체가 사업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전 글에서 다뤘던 예래동 2.5조 유령도시도 말레이시아 대기업이 투자한 사업이었다. 제주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외국자본의 규모에 현혹되어 사업 리스크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두 사례가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둘째, 사업 구조의 복잡성이다. 헬스케어타운은 단순한 부동산 개발이 아니라 의료법과 외국인투자촉진법, 제주특별법이 얽힌 복합 프로젝트였다. 녹지국제병원의 내국인 진료 제한 소송이 대표적이다. 부동산 실무에서 권리관계가 복잡한 물건은 아무리 입지가 좋아도 리스크가 크다. 법률 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대 자본을 쏟아붓는 것은 기초 없이 고층 건물을 올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반 매수인도 매물을 검토할 때 법적 분쟁 가능성을 반드시 따져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방치 비용의 문제다. 2017년부터 9년째 공사가 멈춘 건물들은 중산간 지역 특유의 습기와 바람에 노출되어 심각하게 노후화되고 있다. 포스코건설이 시공하던 대형 구조물의 옥상 철제에는 녹물이 흘러내리고, 건축 자재는 현장에 방치된 채 쌓여 있다. 건물 자체가 유자 형태의 타원형으로 거대하게 설계되어 있어 철거도 보수도 막대한 비용이 든다. 낚시하러 가는 길에 이 풍경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는 말 외에는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9년째 멈춘 사업의 현재와 앞으로의 과제
다행히 최근 들어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6년 6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와 녹지그룹은 자산양수도 업무협약을 다시 체결했다. 녹지그룹이 보유한 미개발 부지와 공사 중단 건축물 7개 필지, 약 19만 7천 평방미터 규모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인수하겠다는 내용이다. 매입 비용만 1,540억 원으로 추산되며, 공사 재개에 필요한 추가 사업비는 3,963억 원으로 예상된다. 2029년까지 공사를 마무리하고 2030년 전면 재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사업은 이미 여러 차례 기간 연장과 재투자 약속이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이행되지 않았던 전례가 있다. 새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동력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약 4천억 원에 달하는 사업비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가 최대 관건이다. 단기 차입과 은행 차입을 통한 조달 계획이 나와 있지만, 제주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현 상황에서 이 규모의 자금 확보가 순조롭게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결과가 좋았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제주도를 바라보는 눈살을 찌푸리게만 한다. 예래동 유령도시에 이어 헬스케어타운까지. 제주에는 외국자본과 대규모 개발의 꿈이 좌초된 현장이 두 군데나 있다. 공인중개사로서, 그리고 제주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의 해결 과정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 땅 위에 다시 무엇을 세우든, 이번에는 제주 사람들의 삶과 진짜 공익을 먼저 생각하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중산간도로를 달려 한림항에 도착해 낚시대를 펴는 순간만큼은 이런 걱정을 잠시 내려놓지만,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면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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